정치는 마치 두개의 입장이 충돌하는 경쟁구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많이 그렇다고들 하는 것 뿐이다. 그러니 시야를 약간만 뒤로 땡기면 그 구조는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삼원구조 / 각 부처 예하의 수많은 부서들의 복잡한 관계 같은 것들은, 두개의 입장이 충돌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결국 정치에 대한 우리의 형이상학이 실제 구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투표라는 제도는 우리의 협소한 형이상학이 만들어낸 몇 개의 입장만을 고를 수 있게 하는데, 그래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수많은 입장들 중 자신만이 "진짜"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만 권력을 얻고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입장들 중 진짜를 골라내기 위해 논리, 과학, 사례들을 동원한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하나의 진짜-입장이 권력을 얻고 횡포를 부려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진짜-입장이라는게 영원하지 않을 뿐더러 게임에서 패배한 가짜-입장들이 아예 폐기처분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유령처럼 공론장을 배회하다가 권력을 얻으면 다시 전면에 나와 다시 주인노릇을 한다. 결국 어떤 입장이 주인이 되더라도 횡포를 부릴 수 밖에 없는 이 구조속에서 투표는 체제 유지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그렇다고 투표라는 제도를 당장 폐기처분 할 수는 없으니 이 투표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적당하겠다.
국가의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삼권분립을 만들어 놓았듯이 투표에 있어서도 정당이나 후보가 아닌 어떤 정치적 구도에 투표하는 것이 맞다. 권력 평형의 일환으로 여당을 의회소수당으로 만든다거나, 시장과 시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을 반대로 둔다거나 시장은 여당소속 구청장은 야당소속으로 둔다거나 이런것들이다. 부작용이 제기된다면 다른 구조들도 얼마든지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시민은 투표로서 공권력을 견제해야한다. 새로운 방식의 투표로 어떤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